살았어도 죽은 것…

영화배우 이은주의 죽음에 안타까워 짧은 글을 하나 남겼었지..
(아마도 이 글 바로 아래에 있을 듯..ㅎ_)
holic씨가 남긴 답글에 답하면서 생각난게 있어 쓴다..

주제는 “한 사람의 존재는 주변의 판단에 의해서만 성립된다.”
다시말하면, 아무리 내가 무죄라고 해도.. 다수가 유죄라면 처벌을 받는거..
항상 하는 이야기 같다.. 같은 주제로 몇번째 글을 쓰는지.. 쩝..
그래도 생활하면서 언제나 느끼고 몇번이고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니까..

언제나 했던 시시콜콜한 얘기 말고.. 살짝 다른 각도에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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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는 죽었다.. 이소룡도 죽었고.. 박정희도.. 마릴린먼로도..
그러나 그들을 떠올리고.. 그들에 관해 이야기 하고.. 생각하면…
놀랍게도 그들은 다시 살아난다.. 육체적으로 살아나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고 대다수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자리잡는 순간..
그 순간.. 떠나간 이들의 ‘존재’가 뚜렷해지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살아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아직까지는…)..
그러나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심지어 험담조차 않는다..
완전히 잊혀져 곁에 있어도 동선을 막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음.. 만약 이렇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_ㅜ)
내 ‘존재’는 없다.. 즉, 살아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세상엔 그러한 존재들이 많다…
누구나 남에게 인정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 맘인데..
떠나간다.. 어떤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가족도 없고.. 심지어 기관에서조차 받지 않는..
병에 진물려 죽을날만 세는.. 그나마 가끔 간호해주던 이들조차 떠난..
이러한 사람들.. 뿐만아니라..
남들이 보기엔 아무런 어려움도, 신경쓸것도 없어 보이는데..
위의 사람들이 겪는 똑같은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꼭 1대다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1:1의 상황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너와 나.. 오직 둘뿐이라면..
날 정의하고 형성해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닌.. ‘너’ 뿐..
따라서 ‘네’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내 자체를 거꾸로 볼지라도, 그것이 나의 진실이 되고..
한번도 일어난 적 없었던 거짓 과거조차 사실이고 역사가 되는 것이다..
하물며.. ‘네’가 나를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미 ‘죽은’ 것이며.. 네 사고 ‘밖’에 있는 ‘공간적 데이터’에 불과한 것이겠지..

여기서.. ‘죽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죽었다는 것은 사실.. 살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어둡다는 것이 사실은.. 밝지 않은 것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과 같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 A라는 학생이 있다고 치자..
그는 공교롭게도 나와 여지껏 한번도 마주친적이 없다..
같은 과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고.. 친구의 친구를 통해 만날 길도 없다..
철저히 내 사고의 영역에서 벗어난 이 A라는 존재는..
안타깝게도 나에겐 죽은.. 살아있지 않은.. 태어났는지 조차 알수없는..
전혀 관심 밖의 인물인것이다.. A에게도 나는 같은 개념이다..

어차피 세상이란 내 멋대로 사는것이긴 한데..
(예를들어, 색맹이신 분들은 그들만의 세계가 펼쳐지지..)
내가 누군가를 나름대로 정의한 것이.. 실은 완전히 틀렸을지 모른다는 생각..
나는 항상 하면서 살아.. 내 판단보다는 남의 표현에 의지하는 편이니..
그래서 subtext를 제때 알아채지 못하는 걸지도… 알아도 일단 접어두니까..

너무 조심스러운 건가? 좀 더 날 말뚝박을 필요가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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