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다!
인생은 참으로 짧다.
MS는 광고에서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데까지 약 40초를 할애했다. 한국인과 미국인 수명이 평균 78세이므로 광고에서 1초를 1.95년, 다시말해 약 712일로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1초를 712일처럼 살고 있을까?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죽어간다. 너무 빨라서 체감할 수 조차 없다. 마치 지구가 비행기의 두배 속도인 시속 1,609km로 자전하는데, 인간은 단지 밤낮이 바뀌고 화장실 변기물을 내리면서 대충 인지할 뿐인 것과 같다. 게다가 이 죽음에 이르는 속도는 나이와 비례해서 가속도가 붙는다. 평균 약 80년을 산다지만 숨을 거두기 직전에 자신의 발자취를 파노라마처럼 되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은 찰나의 속도로 죽어간다.
인간의 신체는 약 200조 개의 체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체세포의 평균수명은 약 한달이며, 화학적 또는 물리적 요건과 해당 생장인자가 충족될 경우 24시간에 한번 꼴로 분열한다. 세포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고 복잡한 신호전달을 통해 사고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필연적으로 엔트로피 또한 발생하며 이것이 삶과 죽음의 생화학적 쳇바퀴를 돌게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엔트로피는 역전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에 따르면 그것은 오로지 AC만이, 그것도 10조년쯤은 걸려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인간의 죽음은 세포의 죽음이고 심신 동일론과 나의 바램 또는 생각에 빗대어 말하자면 영혼 또한 세포의 물리적 죽음과 짧은 여행을 함께 한다.
인생은 짧다. 죽음 뒤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살아있는 자들에게 죽은 자들은 추상적이며 그렇기에 죽은 자들은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살아있는 자들의 입방아에 영웅에서 변절자가 된다해도 말이다. 하물며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조차 않는 자들은 짧은 인생 후에 존재 자체가 깔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실낱같은 영생의 희망은 후세에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 뿐이다. 물리적 혹은 영적인 영생은 토테미즘의 기원부터 현재까지 전인류가 공유한 상상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상상이 계속되고 구체화되면 현실이라고 믿게 된다. 이 믿음은 인간의 사고를 단순화한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두려운 상황에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상하고 믿으면 된다. 현재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영생, 구원 등 반대 상황을 상상하며 믿게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이 두려움과 상상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
상상을 믿든 믿지 않든, 인간의 신체와 사고는 엔트로피의 증가와 함께 생을 마감한다. 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법칙이 사라지면 드넓은 우주조차 공멸하게 될 것이다.
수험생이거나 군인이거나 혹은 원치않는 상황에 놓였을때 시간은 정말 더디게 간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이라도 1초를 712일처럼 살지 않는다면 80년 인생도 단순한 생화학적 현상으로 순식간에 끝나버릴 것이다. 앞서 나는 “엔트로피는 역전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고자 하는게 아니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생화학적 수명이 끝난 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고 있다. 과연 당신이 죽고 난 후 무엇을 남길 것인가? 개인의 영생인가? 후세의 안녕인가?
엔트로피를 역전하지 않고도 영생할 수 있는 답이 있다. “실낱같은 영생의 희망은 후세에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 뿐”이라고 했다. 따라서 후세의 안녕으로 개인은 영생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순간도 1초에 712일이 지나고 있다. 자, 이제 무엇을 해야하겠는가?